‘악플'이 탤런트 최진실 씨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 인터넷은 분명 현대 문명의 총아이며 이기(利器)이다. 정보는 빠르고 간편하게 유통되며 개인 간의 소통이 쉬워졌다. 그러나 익명성으로 인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잘못 된 인터넷 문화가 일반화되다시피 되었다. 무제한적인 댓글들이 정치적 의사를 왜곡시키는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최진실 씨든 누구든 죽음을 결단하도록 궁지로 몰아가는 것이 인터넷이라면 그건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독극물이요, 흉기일뿐이다.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여러 규제 방안이 강구되어 왔으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반론에 묻혔었다. 그러다 이번 최씨의 죽음을 보면서 인터넷의 폐해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정부 여당에서 실명제를 강화하고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을 사이버모욕죄로 처벌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공감대에서 나온 것이다.
인터넷 환경은 우리가 세계의 선두 그룹에 들어 있다. 우리처럼 광통신망이 세밀하게 깔려 있는 나라가 없다. 인터넷 보급률도 가장 높아 모든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또 생산하며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문화에 의한 폐단도 가장 큰 셈이다. 결국 그에 대한 규제나 대응도 우리가 선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자는 자정(自淨)을 기대한다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국민이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설을 하는 동물이다. 인터넷이야말로 전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배설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익명으로 저지르는 언행은 때로 살인적인 폭력이 된다.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개인적인 비밀을 폭로하여 인격살인을 가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비난받을 여지가 거의 없는 공간이다보니 범죄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은 커녕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니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스스로를 도취시킬 수 있는 장소가 되어서, 익명성으로 일상의 분노와 불만을 배설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대부분 자신보다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참으로 중요한 자유이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들이 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표현수단을 물적(物的)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당연히 제한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의 전제로서, 광범위한 익명성의 보장은 이제 재고할 때가 되었다. 익명성이야말로 오늘날 인터넷 환경에서 그 자체로써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성이 표현의 자유의 필요조건인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익명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여지를 없애야만 건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더욱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때에 익명성을 제한하는 것이 정확한 여론을 형성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만으로 인터넷이 완전하게 정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누구나 '악플'의 유혹에 빠지는 '언제나 열려 있는' 범죄의 소지는 대폭 줄일 수 있다. 최소한 인터넷 상의 범죄는 '의도적인' 범죄로 국한될 것이다.
그리고 본명(本名)을 감출 목적으로 쓰는 필명과 ID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필명이나 ID는 엄격히 말해 가면(假面)과 같은 것이다. 가면무도회야말로 신분을 감추고 본능을 발산하기 위해 여는 해방구가 아닌가. 특히 지금처럼 연령조차 따지지 않고 익명으로 무제한적인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댓글 제도는 반드시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 포털과 언론사들이 기사에 댓글을 허용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자사이기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이버모욕죄를 두어서 처벌 위주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미 수많은 특별법과 행정법규의 벌칙 조항으로 형법 체계가 누더기가 되어 있다. 이것은 입법만능주의에 빠진 결과이다. 더욱이 사이버모욕죄의 경우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사법당국이 수사할 수 있게 한다니, 이는 자칫 언로와 인터넷의 미덕인 소통을 막아 결국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는 입법이 될 수 있다. 굳이 신설하겠다면 그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하여 그러한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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