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라크, 그리고 한반도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11-06 18: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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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중앙대학교 법학과 교수) 오마바 당선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오마바의 정책과 그들의 정책에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들러댔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의 성장배경이 비슷하다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말마저 나오고 있다. 보수 진영의 대표급 인사들이 오바마는 좌파가 아니라고 나서는 진풍경(珍風景)도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만일에 이들의 말이 옳다면 반미(反美) 정서가 강한 유럽 국가들이 오마바의 당선을 반길 이유가 없다. 오바마가 단순히 흑인이라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보는 것은 단순한 사고(思考)다. 유럽 국가들이 오바마의 당선을 반기는 것은, 미국도 그들을 따라 ‘포스트 모던’한 세계로 들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바마 당선으로 인해 가장 급격한 변화가 생길 문제는 물론 이라크 전쟁이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라는 점을 대선 출마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라크에서의 철군(撤軍)은 미국민에 대한 그의 약속이다. 오바마는 그 외에도 그럴싸한 대외공약을 많이 내걸었다. 이란의 핵 개발을 막을 것이고, 북한과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핵 비확산(NPT) 체제의 훼손을 막겠다는 것이다. 유태인 표를 의식해서 이스라엘을 지키겠다는 공약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 철군 외의 다른 공약은 공허(空虛)하다. 클린턴과 조지 W. 부시가 막지 못한 북한과 이란의 핵을 도무지 무슨 재주로 막겠다는 것인가 ? 오바마가 막을 수 있다면 클린턴과 부시가 이미 막았을 것이다.

오바마는 테러와의 전쟁의 주된 전장(戰場)은 아프가니스탄이라면서, 이라크 전쟁은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이라크가 그들의 미래를 홀로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매달 100억 달러가 들어가는 이라크 전비(戰費)를 경제를 살리는데 쓰겠다고 했다.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쟁은 무모한 것이었다. 네오콘들은 고차원 방정식인 이라크 문제를 더하기 빼기 정도로 보고 침공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철군(撤軍)을 하는 문제도 역시 고차원 방정식이다. 더하기 빼기하는 식으로 철군하면 더 큰 재앙이 닥쳐올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라크 철군을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약속했고, 그 약속으로 당선됐다.

부통령 당선자인 조지프 바이든은 상원의 외교통(通)이지만, 그는 ‘진보파 중의 진보파’, ‘유화파(宥和派) 중의 유화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이든은 이라크 해법(解法)으로 이라크의 분할(分割)을 주장한 바 있다. 이라크를 순니, 시아, 그리고 쿠르드로 3분(分)해서 독립시키고, 미국은 손을 떼자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駐)크로아티아 대사를 지낸 피터 걸브레이스도 이런 주장을 했다. 그는 그런 주장을 담은 책 ‘이라크의 종말’(The End of Iraq)을 펴내기도 했다. (Book World 59번에 소개되어 있다.)

이라크는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다. 이라크 인구는 약 2800만 명인데, 그 중 80%가 아랍 무슬림이고 나머지 20%(약 550만 명)는 쿠르드족(族)이다. 무슬림 중에선 시아파(派)가 65%, 순니파(派)가 35%다. 사담 후세인은 순니 출신이다. 후세인 시절에는 소수파인 순니가 이라크의 실권을 장악했었다. 인구가 많은 시아파는 남동부에 살고 있는데, 같은 시아파인 이란과 종교적 및 정서적으로 가깝다. 시아파는 이란처럼 이슬람 종교국가를 건설하고자 한다. 반면 세속적인 순니파는 그들이 참여하는 중앙정부가 이라크 전체를 통치하기를 원한다.

쿠르드족(族)은 ‘쿠르디스탄 공화국(Kurdistan Republic)’이란 독립국가를 그들이 사는 북부 지역에 건설하기를 원한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쓰는 쿠르드는 터키와의 접경지대에 사는데, 현재 자치령으로 인정받고 있고, 독자적인 민병대를 보유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후세인에 의해 독가스 공격을 받아 대학살을 당하는 등 후세인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쿠르드족은 2003년 이라크 침공작전 당시 미국에게 소중한 우군(友軍)이었다. 당시 작전에 참가한 미군이 24,800명, 영국군이 46,000명, 그리고 쿠르드 민병대가 70,000명이었으니, 숫자로만 보면 미군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쿠르드 군대가 연합군으로 참전했다.

이라크에서 석유가 나는 곳은 시아파 지역인 남부와 쿠르드 지역인 북부다. 순니파가 이라크가 단일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지역에 석유가 없기 때문이고, 쿠르드와 시아파가 독자적으로 분리 독립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들의 지역에서 석유가 나기 때문이다. 현재 중동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은 이라크와 이란이라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워낙 석유생산을 많이 해서 이미 고갈단계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분할론은 현실성이 없는 발상(發想)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제 부시 행정부는 끝나 버렸다. 그리고 오바마는 미군 철수를 공약했다. 미국이 나가버린 이라크가 단일한 국가로서 유지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오바마는 이라크가 스스로 서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1973년 파리 평화협정에 따라 미군이 남(南)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당시 남베트남 정부에 많은 군사장비를 남겨 주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1975년 봄, 사이공은 함락되었고, 미군이 남베트남 군(軍)에게 주었던 많은 최신 무기는 송두리째 통일된 공산 베트남의 수중(手中)에 들어갔다. 그 후 한 동안 베트남은 세계에서 몇 번째로 군비(軍備)가 많은 나라로 뽑혔다.

따라서 결국 관건(關鍵)은 시아파라고 할 수 있다. 인구가 가장 많고 석유도 많은 시아파는 이미 이란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리면 이란이 더 강해져서 미국에게 더 위험해진다는 신중론이 있었는데, 네오콘은 그것을 무시해서 이란만 좋은 일을 시킨 셈이다.

이라크가 단일 국가로 유지되어 온 것은 어느 면으로 보면 사담 후세인의 공포정치 때문이었다. 후세인이 무너진 후에는 미군의 군사력과 돈으로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계파간 연립정부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과연 이라크 중앙정부가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남쪽에서는 순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그리고 북부의 키르쿠크 유전(油田)지대를 두고서는 쿠르드와 순니 사이에서 내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이라크 전쟁에서의 최후의 승자(勝者)는 이란이 될 것이다. 1979년에 호메이니가 이란에 귀국한 후 이란이 벌인 미국과의 30년 전쟁에서 이란이 승리하는 것이다.

이라크 남부를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두게 되는 이란이 핵 무장을 하게 되면, 이란은 단번에 열강(列强)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유약(柔弱)한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이란의 석유에 포로가 되어 있고, 핵을 가진 이란은 중동의 패자(覇者)로 군림할 것이다. 미국을 몰아낸 이란의 근본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지도(地圖)에서 지우려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마 이라크의 분열과 이란의 핵(核) 보유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을 것이다.

쿠르드족의 독립도 터키와의 관계에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미국은 제4보병 사단을 터키를 경유해서 이라크 북부로 투입하려 했다. 그러나 터키 의회가 마지막 순간에 반대해서 4사단은 침공작전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나중에 쿠웨이트를 거쳐 남쪽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미군이 터키를 거쳐 침공하려고 하자 쿠르드족이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쿠르드족은 미군이 터키를 거쳐 침공하면 터키가 자신들의 지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부시 정부의 네오콘들은 터키와 쿠르드가 그런 사이인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지금도 터키군이 터키와 이라크 사이의 접경지대의 쿠르드 반군(叛軍)을 진압하기 위해 진격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뉴스에 나온다.

터키는 이라크와 접경지대에 ‘쿠르디스탄’이란 독립국가가 생기면 자국 내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이 동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쿠르드 독립은 나토 회원국인 터키에게 대단히 뜨거운 감자다. 이라크 사정은 이처럼 하도 복잡해서, 이라크의 현상(現狀)을 흔들면 제1차 세계대전을 야기한 세르비아 사태처럼 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번에 오바마를 지지해서 화제가 되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06년에 나온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Crossroads’)에서 이라크 이후에 미국이 신고립주의(New Isolationism)에 빠지면 세계가 불행해 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미국은 바로 그런 길을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바마는 유엔을 통한 다자(多者)질서를 강조했지만, 유엔이 이미 기능마비(dysfunction)에 빠진지는 이미 오래됐다. 미국과 대등한 열강(列强)이 된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이사회에 버티고 있는 유엔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 그리고 여(與)와 야(野) 모두가 이라크 문제를 남의 일 보듯 한다. 하지만 이라크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라크 사태는 이란 사태이고, 이란 사태는 곧 핵 비확산 체제의 문제다. 이란이 핵 무장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곧 핵 비확산(NPT) 체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핵 비확산 체제가 무너지면 북한이 어떻게 나갈 것이고, 그러면 일본이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너무나 뻔하다. 미국이란 초강대국이 사라진 동북아에는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열강(列强)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북한이 핵을 갖고, 그 와중에 우리나라가 극심한 국론 분열에 시달린다면, 마치 100년 전의 우리 모습과 너무나 같지 않은가 ?

1차 대전과 2차 대전 당시 서유럽은 미국을 전쟁으로 불러내서 자기들의 자유와 평화를 압제세력으로부터 지켰다. 동서 냉전시대에도 미국이 서유럽의 자유와 번영을 지켰다. 하지만 이제 포스트 모던한 다문화(多文化)의 세계에 빠져 있는 유럽은 미국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본다. 로버트 케이건의 말대로, 미국이 유럽을 지키려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아랍계 이슬람 유권자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반(反)유대, 반미(反美)주의가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서유럽이다.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불가피하고, 열강(列强) 난립의 동북아도 불가피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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