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일보 = 여영준 기자]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이 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 간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가 윤석열 정부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을 놓고 대립하면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예결위는 지난 17일부터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시작했지만, 감액 심사조차 마치지 못했다.
애초 여야는 지난 25일 감액 심사를 마무리하고 내주부터 본격적인 증액 심사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대통령실 예산 등과 관련한 여야 이견으로 예결소위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여야 간 신경전에 내년도 예산안 심사는 사실상 시작 단계에 멈춰있다. 지난 22일 기준 예결위는 9개 상임위 예산(219건) 심사를 마쳤는데 이 중 65건이 여야 이견으로 보류됐다.
그나마 의결된 91건의 세출예산안 감액 규모는 6647억2400만원으로 1조원에도 못 미친다. 보통 국회는 예산안의 3조~5조원 정도를 감액하고 해당 범위에서 필요한 예산안을 증액하는데, 감액 심사가 지연되고 있어 전체 예산 일정이 연쇄적으로 미뤄지게 됐다.
여야는 오는 28일 예결소위를 열어 감액 심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앞서 심사가 보류된 소형모듈원자로 기술개발, 청와대 복합문화 예술공간 조성 사업,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등 예산에 이어 국토위 소관 용산공원 조성 사업과 공공임대주택 예산 등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임기 첫해 목표로 한 국정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법안 처리가 관건이지만 거야(巨野)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10대 국정 과제 추진을 위한 것 등 100건에 달한다. 과반 의석(169석)을 가진 민주당이 모두 틀어막으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8월 발의된 반도체 산업 지원 특별법인 ‘K-칩스법(첨단 전략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은 민주당이 ‘대기업 특혜’라고 제동을 걸어 막혀 있다. 2차전지 생산을 위한 핵심 광물 확보 등을 논의할 대통령 소속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설치와 경제 안보 품목의 수입 국가 다변화 등을 위한 공급망기본법, 영구 임대 공동 관리비 및 공용 사용료에 대해 국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장기공공임대주택법, 농촌재구조화 지원법 등 논의도 진전이 없다. 방위 산업 기업이 큰 부담을 갖고 있는 지체상금을 완화하는 방위 사업 계약 체결 및 이행 등에 관한 법, 원전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 노후신도시재생지원특별법, 재난관리자원법 등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대표 공약과 정부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용산공원 조성과 영빈관 신축, 관련 외교 네트워크 구축, 대통령실 시설 관리, 청와대 개방 및 활용, 행정안전부 내 검찰국 신설 관련 등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이 대거 칼질 대상이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우선 분양 등 공공 분양 지원 예산도 뭉터기로 깎였다.
반면 민주당은 이 대표의 공약 예산을 속속 되살리거나 증액 대상에 올렸다. 지역 화폐 발행 지원과 기초연금 지급, 쌀값 안정화 지원, 재생에너지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주택도시기금 중 공공 임대 주택 지원 예산도 단독으로 증액했다. 민주당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포퓰리즘성 법안들의 강행 처리에 나설 태세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매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민주당의 기초연금 인상 법안은 연간 예산 6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일정 소득 이하의 청년에게 수당을 매달 10만~20만원 주자는 청년기본법 개정안은 향후 5년 동안 25조원~50조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계산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재정을 세금으로 무기한 지원하는 법안 등 연간 1조원 이상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을 50건 넘게 제출했고 여당이 반대하면 일방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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