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헌 80조에 목맨 이재명…왜?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3-19 11: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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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 정치혁신위원회가 '기소 시 직무 정지' 내용을 담은 당헌 80조 삭제 의견을 제기했다가 당 안팎으로부터 돌팔매를 맞는 모양새다.


이에 혁신위가 당헌 80조 삭제 의견은 그간 제안됐던 수많은 안들 가운데 하나일 뿐, 혁신위에서 논의나 검토가 이뤄진 적이 없다며 한발 물러섰으나 여전히 시한폭탄으로 남겨진 상태다.


민주당 당헌 80조는 뇌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소를 눈앞에 둔 이재명 대표가 이 조항 때문에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혁신위가 현재 대장동 사건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이 대표의 기소 이후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당헌 80조 삭제를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마디로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비명계 의원들은 특정인을 위한 당헌, 당규 개정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당을 분리하지 못해 '방탄 정당' 논란이 재점화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당 청년 정치인들도 "당헌 80조 삭제야말로 방탄정당으로 가는 길"이라고 날을 세웠다.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이 지난해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해 신설한 내용인데 이제는 반년만에 당헌 80조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이 대표가 개딸의 폭력적 팬덤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이 정상적인 민주정당의 길을 가는가 싶었는데 이틀 만에 팬덤정당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이동학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어떤 혁신을 더 할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라며 "이렇게 혁신을 후퇴시킬 것인가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것은 혁신의 이름을 빌린 낡음이고 구태"라고 적었다.


박성민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도 "지금은 당의 혁신이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위기의 상황임에도 가시적인 변화는 없는 지금, 당헌 80조 삭제 논란은 불필요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님이 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을 잠재우는 길은 이재명 대표가 “당헌 80조 삭제는 없다”라고 선언한 후 당헌 80조 해석의 결정권자인 사무총장을 교체하겠다고 밝히면 된다.


그런데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설사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당헌 80조를 삭제하거나 자신의 측근인 사무총장을 통해 이를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장기화하는 당 내홍을 수습하고자 한껏 몸을 낮추며 '전면적 인적 쇄신' 가능성을 보이면서도 정작 사무총장 교체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비명계 의원들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제외한 지명직은 모두 교체 대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가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받은 만큼, 그에 합당한 모습을 '사무총장 교체'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 사무총장은 당의 살림을 책임지고 내년 총선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핵심 보직이다. 특히 사무총장은 이 대표를 포함한 기소된 당직자에 대한 직무정지(당헌 제80조 1항)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에 따라 친명계에서는 당 사무총장은 교체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이다.


당 사무총장직은 당 대표와 호흡을 맞춰 내년 총선을 이끌어야 할 중요한 자리인데, 자칫 섣부른 인사 교체로 사무총장부터 호흡이 맞지 않게 되면 이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친명계가 당 사무총장 자리에 민감해하는 건 이 대표의 거취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조만간 이 대표를 기소할지, 그에 앞서 2차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무총장이 비명계 인사로 교체되면, 기소 직후 그가 당헌 80조에 따라 당 대표 직무 정지 결정을 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당헌 80조를 삭제하거나 사무총장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재명 대표가 끝까지 당을 ‘방탄 정당’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옥중공천’을 하는 참담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 선택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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