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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사상 첫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돌파마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우리 경제를 둘러싼 낙관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화려한 지표 이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우려스러운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국책 연구기관과 경제 학계는 일제히 “이대로 체질 개선을 미룬다면 2030년부터 우리 경제가 역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라는 뼈아픈 경고를 내놓았다. 일시적인 반도체 수출 호황에 취해 다가오는 구조적 위기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을 범하게 될 것이다.
작금의 경제 성과가 온전한 경제 기초체력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올해 2분기 외부감사 대상 제조업 법인의 영업이익률은 24%에 달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곳을 제외하면 7.2%로 곤두박질친다. 올 1~8월 전체 수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52.8% 증가했으나 반도체 부문을 제외할 경우 증가율은 18%에 불과했다. 더욱 뼈아픈 대목은 석유화학, 철강, 배터리 등 우리의 전통 주력 산업이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국의 거센 저가 공세 및 공급 과잉에 직면하여 무역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서는 등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현재의 수출 호조는 반도체라는 단일 엔진에 의존한 ‘착시 현상’이며, 슈퍼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허약해진 경제 체질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미국의 인공지능(AI) 투자가 2028년경 조정기를 맞게 되면 제조업 일자리의 42%를 차지하는 중저위 및 저위 기술 산업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섬뜩한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
KDI는 지난 30년간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약 1%포인트씩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했다. 기술 혁신 둔화, 급속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그리고 무엇보다 총요소생산성 증가세의 둔화가 잠재성장률 하락을 부추기는 핵심 원인이다. 과거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선진국 기술 모방 중심의 ‘추격형 경제(Fast Follower)’ 모델과 단순한 노동 및 자본 투입 위주의 양적 성장 방식은 이미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다. 과거처럼 저금리나 확장 재정, 부동산 경기 부양 등을 동원한 단기적인 총수요 진작이나 대증요법으로는 이 장기적인 하락 추세를 결코 멈출 수 없다. 이제는 동일한 자원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혁신 능력을 기르고, 스스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선도형 경제(First Mover)’로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전환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저성장의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경제 전반에 걸친 과감하고 고통스러운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산업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혁신을 질식시키는 낡은 규제부터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각종 제재와 의무가 급증하는 ‘규제 누적’ 현상을 해소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민간의 과감한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성장 동력인 ‘휴먼 아이디어(HI)’를 창출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 낡은 주입식 교육을 타파하는 교육 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여성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고용 유연성을 높이며 노동 시장의 경직된 이중구조를 혁파하는 노동 개혁 역시 더는 지체할 수 없는 핵심 과제다.
이러한 대전환의 시기에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 재정립도 강도 높게 요구된다. 과거처럼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특정 기업과 산업을 선별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낡은 ‘개발 국가’ 식 접근은 그 유효기간이 끝났다. 앞으로의 정부는 민간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첨단 산업의 기초 연구와 초기 인프라 투자의 위험을 과감히 분담하며 새로운 시장 조성을 조력하는 ‘기업가형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덧붙여 정치권은 소모적인 권력 다툼과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 재편과 노동 개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자리 감소나 이해관계 충돌을 지혜롭게 조정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정치 본연의 리더십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구조 개혁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지금의 반도체 초호황이 한국 경제의 구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준 것은 실로 천만다행(千萬多幸)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안심하고 낭비할 시간은 결단코 길지 않다. 작금의 일시적 특수에 도취해 기업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 하거나 경제 체질 개선이라는 골든타임(Golden Time)을 또다시 허비한다면, 2030년 역성장이라는 국책기관의 끔찍한 경고는 머지않아 참담한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반도체가 벌어준 이 마지막 골든타임에 뼈를 깎는 혁신으로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다지는 일에 민·관·정 모두가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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